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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큐레이션 : (사랑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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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다”라는 표현은 어떤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 헤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해요.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일을 좋아하죠.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과 두근거림, 숨길 수 없는 환한 웃음이 전해주는 행복의 감정까지 모두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나 모든 사랑이 원하는 결말을 가져다주지는 않아요. 소통하지 못한 사랑은 상처로 돌아오고 씁쓸함만 남기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스스로 사랑에 빠져들어요. 결말이야 어떻든 한 사람에게 마음을 줬다는 것은 소중한 추억일 테니까요. 여기 혼자만의 사랑에 빠진 네 명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가볍게 스쳐지나간 사랑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삶을 바꾼 처절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해서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눈이 높아진 한국어 강사 ‘나’에게 서서히 스며든 사랑이 있었어요. 한글은 하나도 쓸 줄 모르는 재미 교포 ‘폴’. ‘나’에게 폴은 높아진 이상형 그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는 학생이었죠. 자주 찾아와 시시콜콜 질문이 많았던 그가 처음엔 귀찮기도 했어요. 그러나 조금씩 기다려지더니 어느새 규칙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됐죠. 그래서일까요?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그 착각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를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고 마는. 글쎄, 폴과의 관계도 착각 그 이상은 아니었을 텐데 “나는 도대체 어쩌다가 폴에게 빠져버린 것일까”요. (백수린, 「폴링 인 폴」, 『폴링 인 폴』)

 

그러고 보면 오랜 외로움은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흐리게 만들어요. 다정한 말 한마디, 나를 향한 미소 한 번에 굳게 닫힌 마음이 나도 모르게 열려버리니까요.

 

‘인주 언니’도 그랬어요. 낯선 타국에서 만난 외국 남자아이에게 마음을 준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마흔이 넘도록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과 본능적인 감정이 작용했을 거예요. 그 아이와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사이가 되면서 삶에 활력이 생기고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봤을 테니 고백까지 해본 것이겠죠. 하지만 사랑이 어디 그렇게 쉬울까요? (백수린, 「빛이 다가올 때」,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나’와 ‘인주 언니’의 짝사랑에 비하면,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평생을 사랑하는 여인 곁에 있다가 마침내 고백에 이르렀을 때는 삶이 끝나버린 ‘시라노’(『시라노』)의 헌신적인 사랑은 어떤가요? 긴 짝사랑 끝에 ‘록산’의 마음을 얻었으니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다가가는 것도 사랑이라면 츠바이크의 ‘낯선 여인’(『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이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는 소설가 ‘R’을 향해 평생에 걸쳐 바친 처절한 이 사랑은 또 어쩌면 좋을까요?

 

사랑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의미 있는 행복을 경험하게 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스스로 헤어나기 힘들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소중한 추억을 갖기도 하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추위에 움츠러들었던 마음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해요. 바야흐로 사랑하기 좋은 계절, 추운 겨울을 외롭게 견뎌왔다면 지나간 사랑에 연연하지 말고 (조금은 덜 아플) 사랑에 빠져보시길 바라요.

 

ft.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by. 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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